✠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聖 아타나시우스 (A.D. 300~373, Athanasius Alexandrinus, Athanasius of Alexandria) : 교회학자, 동방 4大교부


: 聖 아타나시우스는 평생을 아리우스 이단과 싸우면서 온몸으로 니케아 신경을 지켜 낸 교부이다. 아리우스 논쟁이 발생했을 당시 부제였던 성인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聖 알렉산더 1세의 비서로서 聖 알렉산더 1세 주교와 함께 니케아 공의회(A.D. 325)에 참석했다. 부제였기 때문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적으로 발언은 못했지만 뒤에서 니케아 신경을 작성하여 정통 신앙을 수호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동로마 황제의 보호를 받던 아리우스주의자들은 니케아 신경을 반대하면서 성인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성인을 335년 11월 7일에 트리어로 추방한다. 성인은 다섯 차례나 유배되었으며, 주교직 46년동안 20년을 유배지에서 보냈고, 일흔이 되던 해에 다섯 번째로 유배되었다. 나지안주스의 주교 聖 그레고리우스는 성인을 일컬어 '교회의 기둥', '참다운 하느님의 사람', '산 자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청지기'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황제들은 성인에게 '세상과 싸우는 아타나시우스'라는 별명을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강조하여 후대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의 완전한 기틀을 마련했다. 성인은 동방 4大교부 중 한 분이며, 교회사 이천년간 가장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룩한 성인에게만 부여하는 '교회학자' 칭호를 받은 교부이다. 성인의 축일은 5월 2일이며 이 날 전세계의 모든 교회가 미사중에 성인을 기념하고 있다.
- 내가 사랑한 교부들(한국교부학연구회 著, 분도출판사, 2006) -
http://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saint&ctxtSaintId=1543&Orggubun=101


우리가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말씀이 친히 사람이 되셨다.
- 말씀의 강생론 54,3. : 내가 사랑한 교부들(한국교부학연구회 著, 분도출판사, 2006) 165. -


인간은 본성상 필멸의 존재이나, 은총으로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 말씀의 강생론 4. : 내가 사랑한 교부들(한국교부학연구회 著, 분도출판사, 2006) 165. -


비육체적이고 부패할 수 없으며 비물질적인 하느님의 말씀께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고 그 전에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주의 어느 부분에도 그분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었고, 그분은 성부와 함께 계시면서 만물을 채우고 계셨습니다. 말씀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오셨고 우리에게 환히 나타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또 우리의 부패를 보시고는 마음이 움직이시어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창조된 것이 멸망하지 않고 성부께서 사람을 지어 내실 때 행하신 그 업적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육신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육신을 친히 취하셨습니다. 말씀께서는 단순히 육체 안에 머무르시거나 또는 육신의 모양으로만 발현하시는 것으로 그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발현만을 원하셨더라면 인간이 지난 육신보다 더 고귀한 육신을 취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실제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동정녀의 몸에서 육신의 성전을 지어 내시어 그 안에서 거처하시고 그 육신을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그분은 우리에게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취하셨고, 모든 사람이 죽음의 부패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그 육신을 모든 이를 위해 죽음에 내맡기시어 지극한 사랑으로 그것을 성부께 바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한편으로는 당신 안에서 죽으려 하는 모든 사람의 생활에서, 그들을 거슬러 공포된 죽음의 법을 폐기하셨습니다. 죽음은 주님의 육신을 너무도 강력히 공격했기에 그 힘을 잃어, 같은 육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기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부패의 법에 빠진 사람들에게 불멸을 되돌려 주시고 그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이키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취하신 육신과 부활의 은혜로 말미암아 흡사 밀짚을 불에 태우듯 그들 안에서 죽음을 소멸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친히 죽을 수 있는 육신을 취하시고, 그 육신은 모든 이들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참여함으로써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서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 안에 거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부패하지 않으시고 부활의 은총으로 인해 모든 이에게서 부패를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취하신 이 육신을 아무 흠도 없는 희생 제물로 죽음에 내맡기심으로써, 그 봉헌의 힘으로 같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죽음을 쫓아 버리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만물들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 당신 육신의 성전을 바치심으로써 죽음에게 빚진 것을 갚으셨습니다. 우리 육신과 동일한 육신을 취하심으로써 우리와 일치하신 부패할 수 없는 하느님께서는 부활의 약속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불멸을 입을 권리를 주시고 또 실제로 입히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사람들 가운데 거처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부패마저 이제는 사람들에게 아무 힘도 미치지 못합니다.
- 말씀의 강생론 8-9. : 성무일도 제2권(한국천주교주교회의) 1630-1632. -


따라서 삼위일체는 거룩하고 완전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 안에서 하느님께서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그 어떤 이질적이거나 외부적인 것과 섞이지 않았으니, 다시 말해 피조물이 뒤섞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오히려 모든 것을 창조하시며 만들어 내십니다. 자신 안에서 동일하시며, 본성으로 보자면 갈라놓을 수 없으시며, 활동으로 보자면 유일한 분이십니다. 사실 성부께서는 말씀을 통해 성령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 이리하여 거룩한 삼위일체의 단일성이 보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 안에 계시며 만물을 꿰뚫어 계시는 한 분 하느님"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성령 안에서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이름과 말로만 삼위일체이실 뿐 아니라 참된 실체로서 삼위일체이십니다. 사실 성부께서 '있는 이 바로 그분'이시라면, 그분의 말씀 역시 '있는 이 바로 그분'이시며, '모든 것 위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실재하지 않는 분이 아니라 참으로 존재하고 실재하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보편 교회의 신학적 사색은 삼위일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신학적 사색이 삼위일체 이하가 아니라는 것은 오늘날 카야파를 추종하는 유다인들이나 사벨리우스파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삼위일체를 교회의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그대들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시오." 그래서 사도들은 가서 그렇게 가르쳤으며, 바로 이것이 하늘 아래 모든 교회에서 이루어진 복음 선포입니다.
- 세라피온에게 보낸 편지 1,28. : 교부들의 길(Adalbert Gautier Hamman 著, 이연학 최연오 譯, 성바오로출판사, 2010) 167-168. -


사도들은 전해 받은 것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신비(성사)와 그리스도에 관한 교의가 왜곡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거룩한 '말씀'(하느님의 아들)께서는 우리가 그들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 될 자격이 있고 우리는 그들의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우리는 오직 그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의 교의를 성실하게 가르치는 이들을 통해서,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1티모 1,15) 말을 받습니다. 그들과 함께 우리는 바탕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말을 듣고 제자가 된 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말씀이신 하느님의 "목격자로서 종이 된 이들"(루카복음 1,2)이며, 그분께 직접 들은 바를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 축일 서간집 2,7. :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성경Ⅳ 루카 복음서(Arthur A. Just Jr. 엮음, THOMAS C. ODEN 책임 편집, 한국교부학회 이현주 옮김, 분도출판사, 2011) 58. -


(마르코복음 13,32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에 대한 설교)
제자들이 종말에 관하여 여쭙자 그분은 이렇게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 아들도 모른다"(마태 24,36; 마르 13,32). 육신에 따라서는 그분도 인간으로서 인간 조건의 한계 속에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평범한 인간으로서 미래를 알지 못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 모르는 것은 인간 조건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 신성에 따라서 보자면, 몸소 찾아오시어 심판하시고 신랑이 되어 주실 말씀이신 그분은 언제 어떤 시간에 오실지 알고 계십니다. ... 그분은 사람이 되시어 모든 인류와 더불어 굶주리시고 목말라하시고 고통을 겪으시면서(참조: 마태 4,2; 마르 8,31; 루카 24,46; 요한 19,28),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알지 못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버지의 말씀이요 지혜이신 당신 신성에 따라서는 알고 계시며, 알지 못하시는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 아리우스파 반박 연설 3,46. :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성경Ⅲ 마르코 복음서(Thomas C. Oden / Christopher A. Hall 엮음, THOMAS C. ODEN 책임 편집, 한국교부학회 최원오 옮김, 분도출판사, 2011) 264. -


(마르코복음 13,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에 대한 설교)
말씀께서는 개인의 종말과 만물의 종말을 우리에게 감추셨습니다. 사실, 개인의 종말이 만물의 종말이고 만물의 종말이 개인의 종말입니다. 그날이 불확실한 까닭에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날마다 부름 받은 대로 걸어갈 따름입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필리 3,13 참조).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알고서도 중간 과정을 소홀히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날을 알지 못한다면 날마다 더욱 잘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구원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참조: 마태 25,13; 마르 13,33).
- 아리우스파 반박 연설 3,49. :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성경Ⅲ 마르코 복음서(Thomas C. Oden / Christopher A. Hall 엮음, THOMAS C. ODEN 책임 편집, 한국교부학회 최원오 옮김, 분도출판사, 2011) 268. -